보도자료Ⅷ

< 국세신문 2019. 9. 19 > 


- 어려울수록 ‘정도 경영’…힘들어도 결국 결실 맺어
- 베풀고, 이용당해도 대가 바라지 말고 “또 베풀어라” 좌우명
- 난관 극복하며 주류도매업체 성공 경영…대학교수 꿈도 이뤄
- 무자료 거래 근절 투명경영…용산세무서 세정협의회장도 맡아
- ‘직원은 가족’ 이기려고 해선 안 돼, 이해 못시키면 이해해야
- 탄탄한 사내 장학제도 직원 자녀들 ‘큰 성공’ 자랑스럽고 ‘뿌듯’

 

경기가 어렵고, 특히 자영업 여건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정부 면허업자인 주류도매업계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폐업하는 음식점들이 속출하면서 주류도매장의 주름도 깊어져가고 있다. 여기에 업계 내부적으로는 과당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출혈경쟁마저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라는 말이 실감나는 상황이다.이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바른 길’을 걸으며 노사가 똘똘 뭉쳐 헤쳐 나가는 현장이 있다. 직원들은 자율적으로 새벽같이 출근해 영업현장으로 달려 나가고, 사장은 이들을 배려하고 뒷받침하느라 늘 마음을 쓰고 있다. 말 그대로 ‘한 가족’이다. 서울의 대표적 주류도매회사로 손꼽히는 (유)용우상사 강신규 대표이사(70.경영학박사)를 만나 본다. / 편집자

 

 

 

요즘 주류업계에는 ‘어렵다’는 말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 난관을 극복해 나갈 방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최저임금 인상 이후 자영업이 큰 타격을 받은 데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주류소비 패턴마저 급선회하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위기감이 팽배해 있지요. 여기에다 거래처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협찬’ 사항은 많아 말 그대로 주류도매업이 사면초가입니다.

복합적인 상황으로 찾아온 어려움이기 때문에 ‘한 방’에 해결할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럴수록 업계가 심기일전해서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흔히 어려우면 편법을 찾기 쉽지만 제 경험으로 보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울수록 ‘바른 길’을 가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상황이 어려우면 아무래도 쉽게 가는 길을 찾기 마련인데.

“제가 42년간 주류도매장을 경영하면서 느끼는 것은 결핍은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입니다. 회사를 처음 시작했던 1977년(법인화 출범) 당시 우리 회사의 맥주 세금계산서 발행 비율이 10~15% 수준이었습니다. 80% 이상이 무자료거래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업계 전반 상황이 그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늘 어렵고 불안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습니다. 무자료 거래를 완전히 끊기로 했습니다. 난리가 났었지요. 업계에서는 ‘미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얼마 못 버틴다는 소문은 당연했습니다.

막상 무자료 거래를 끊고 나니까 죽기 살기 식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매출이 80%나 줄어 드니 방법이 없었습니다. 정말 원 없이 일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무자료 다 자르고 나니까 길이 보이더군요. 그것이 우리 용우상사가 성장한 명확한 동기가 됐습니다. 그 때부터 전통이 돼서 이어오고 있습니다.”

 

정도 경영을 하시다보면 어려운 고비도 있었을 텐데.

“큰 위기가 3번 정도 있었습니다. 초창기 과도한 채무구조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성실하게 노력했고, 마침 당시 박태동 회장께서 주류도매업 마진을 6%에서 8%로 조정해 큰 힘을 얻었습니다. 통합으로 법인 출발할 당시 본의 아니게 동업을 해야 했습니다. 문제가 많았습니다. 동업자들을 보상해 주고 내보냈는데 1983년도 마지막 동업자를 내보낼 때 부채 1억4천만원을 모두 떠 안았습니다. 당시로서는 타격이 컸습니다. 도매장 하나 사는 가격보다 비쌌으니까요. 그래도 감수하고 밀고 나갔습니다. 마침 생맥주 바람이 불었고,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경기 생맥주 전체 판매량의 3분의 1을 제가 팔았을 정도로 실적을 올려 위기를 넘겼습니다.

이어 1987년 민주화 바람을 타고 소위 맥주 혼판제가 시행돼 크게 탄력을 받았습니다. 그 때 기회를 잘 살려 지금의 사옥을 마련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과정이었고, 제 노력도 있었지만 운도 작용했다고 봅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베푸는 경영’ 철학이 탄생했습니까?

“베푸는 삶은 평소 제가 갖고 있던 좌우명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경영을 하면서 영향을 받았지요. 명리학에서는 무심코 베풀었던 것도 시간이 흐르면 재물이 되어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베풀다 보면 상대방이 이를 이용해서 마음 아픈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베푸는 것을 중단하면 배신한 사람 말고, 나머지 베품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서운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또 베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확립한 것이 ‘베풀어라, 당할 수 있다. 그래도 또 베풀어라’입니다.

또한 베풀 때는 어떤 대가를 바라서는 안됩니다. 그냥 베풀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고 죄송스럽게도 세상 이치는 좋은 마음으로 베풀면 그것이 이자까지 쳐서 되돌아옵니다. 베풀면서 참 많이 배우고 사는 삶입니다.”

 

직원 복지제도는 업계에서 정평이 나 있는데…

 

“직원은 말 그대로 우리 회사의 가족입니다. 저는 경영자가 직원을 이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이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되 안되면 회사가 양보해야 합니다. 직원과는 승부를 내는 대결관계가 아닙니다.

복지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고 직원들이 출근해서 깨끗하고 걱정 없는 환경에서 일하고, 열심히 일하는 만큼 최대한 대우도 하려고 노력합니다. 무엇보다 자녀들 교육하는데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고등학생까지는 등록금 전액(연간 400만원 한도)을 지급하고 대학생 자녀에게는 연간 5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정말 고맙게도 우리 직원 자녀들이 참 잘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유수의 대학을 졸업하고 KBS 기자, 삼성, 현대차, LG, SK 그룹 등에서 사회생활도 잘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뿌듯해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보람도 많이 느낍니다.

아울러 우리 직원들이 문화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년 송년회 때 뮤지컬도 관람하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부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입니다만 업계에서는 강 대표님의 공부에 대한 일종의 ‘전설’이 참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전설까지는 아니고요.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주류도매업을 하면서 학력이 높은 제조회사 직원들을 상대하다 보니 공부에 대한 열망이 생겼습니다. 또 사회적으로 인식이 낮은 우리 업계의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공부인데 뭐든 시작하면 열심히 하는 성격이라 하다 보니 대학교수까지 했습니다. 배재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강의한지 15년 됐고, 정년퇴직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규정을 바꿔서라도 자리를 마련할 테니 더 하라고 권했지만 ‘순리’를 존중하며 퇴직했습니다. 제가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따지고 보면 제가 더 많이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용우상사에는 장기근속 직원이 참 많습니다.

“아무래도 업력이 오래되다 보니 오래 근무하는 직원들이 많습니다. 우리 업계가 노동강도가 세고 일이 힘들어 이직이 많은 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 회사는 복이 많은 편이지요. 앞서 대가 바라지 않고 회사가 베풀려고 노력을 했더니 이렇게 크게 이자까지 쳐서 돌아오고 있나 봅니다.(웃음)

장기 근속하는 직원이 많으면 좋은 점도 물론 많이 있지만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회사 부담이 큰 면도 있지만 그것은 직원이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로 연결됩니다.

다만 요즘 새로 느끼는 것은 신규 직원들이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선배들이 회사 규정과는 무관하게 새벽같이 출근해 일을 시작합니다. 차 밀리는 시간을 피해 제조사에 새벽에 가서 술을 싣고 와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지요. 회사가 시키지 않았지만 고참 직원들이 경험상 그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해서 자율적으로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신규 직원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적응이 어렵지요.”

 

요즘 주류도매업계는 어려움을 적극 호소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수치로 나타나는 경기상황도 좋지 않고요.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최저임금 인상 이후 실제로 음식점 등 자영업 폐업률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습니다. 또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기존 음주소비 패턴도 완전히 바뀌는 추세고요. 여기에다 주52시간 근무제는 내년에 확대시행 될 예정입니다. 이 같은 현상은 더 가속화 되겠지요.

주류도매업 환경도 정말 어렵습니다. ‘공짜’를 요구하는 거래처가 너무 많습니다. 경기가 어려우니까 그렇겠지만 세일한다고 협찬해 달라, 개업 몇 주년이라고 협찬해 달라, 옆집은 깍아주고 증정 준다고 협찬해 달라 등등 수없는 요구가 밀려들고 있습니다. 자영업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이런 현상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도매업계 내부적으로는 과당경쟁에 거래처 침범 등 제살 깎아 먹기 식 출혈경쟁에 뛰어드는 경향도 적지 않습니다.

정말로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힘들겠지만 더욱 냉정하게 분석하고 ‘정도’를 가야 합니다. 우리 주류도매업은 정부 면허업입니다. 사명감을 갖고 법과 원칙을 지키는 자세가 절대 중요합니다. 그래야 이 위기를 극복하고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어렵다고 무작정 쉬운 길만 찾아서는 돌이키기 어려워집니다. 정부당국도 이런 상황을 반영해서 필요한 고시 등 정책시행을 서둘러야 합니다.”

 

용산세무서 세정협의회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정부(국세청) 면허업자로서 평소 국세행정에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힘 닿는데까지 세정에 협조하려고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한 지역에서 오래 사업을 하다 보니 과분하게도 능력에 넘는 직을 맡았습니다. 시대적 흐름에 맞게 지역 내 각 업종을 대표하는 납세자들과 만나 국세행정을 홍보하고 납세자의 여론을 청취하며, 기업인들의 애로를 건의하는 역할을 성의껏 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력한 힘이나마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강신규 용우상사 대표이사는?

 

성공한 주류유통인 · 경영학교수로 정평

원칙 존중 · 알짜기업 일궈낸 '업계 전설'

 

 

주류도매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주류 유통인으로 사업의 성공과 학문적 성취를 이룬 ‘레전드급’ 경영인이다. 1949년 생, 충북 영동 출신이다.

 

업계에서 강 대표는 말 그대로 ‘전설’이다. 주류유통질서 문란이 범람하던 시절 느닷없이 ‘미친 사람’ 소리 들어가며 무자료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당연히 거래선이 떨어져 나갔다. ‘고름은 살이 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80%가 줄어든 매출을 발로 뛰며 일으켜 세웠고, 오히려 뛰어 넘어 3000곳이 넘는 거래처를 일궜다. 서울·수도권 업계 랭킹에서 늘 최상위 톱클라스에서 빠진 적이 없다. 업계에서는 전무후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직원들이 워낙 똘똘 뭉쳐 있는데다 자율적 업무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어 효율 면에서는 최고라는 평가와 함께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여기에 강 대표의 베푸는 경영까지 확실한 뿌리를 내려 조직 인화력이 가히 철옹성이다.

 

강 대표의 솔선수범 카리스마는 직원들에게도 외경의 대상이다. 주류 도매장을 경영하면서 늦게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어느 정도까지는 하겠지’였지만 특유의 집중력으로 석사, 박사에 대학교수까지 진출해 15년 동안 경영학 강의를 이어가자 업계에서는 “역시 강 대표"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대학 강의는 본인은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박사과정을 지켜 본 지도교수가 워낙 진지하게 열심히 하는 강 대표를 인정해 지도교수 권유로 성사된 일화가 있다.

 

후학을 양성했던 배재대학교에서도 강 교수는 ‘레전드급’이었다. 얼마나 강의에 집중과 신경을 쓰는지 강 교수 강의가 연구대상이 될 정도였다. 실제로 강 교수는 강단에 서기 3일 전부터 술을 멀리했고, 마치 수험생처럼 준비하며 강의에 임했다. 학생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어서 매번 교수평가에서 최 상위를 기록했고 ‘잊못강’(잊지 못할 강의) 선정도 부지기수였다. 강 교수는 15년 6개월 동안 강의를 통해 벌어들인 수입을 모두 학교에 장학금으로 되돌려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정년퇴임을 결심하자 총장이 직접 찾아와 ‘학내 규정을 고치겠으니 강의를 더 해 달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매사 열심히 살며 어떤 상황에서도 정도를 걷는 강 대표는 최근 가족이 ‘모두 모여 사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외국에서 공부하던 민성(SK 케미칼)양과 수민(삼성전자, 컴퓨터 공학박사)양 두 딸이 모두 성공해서 돌아와 아내와 함께 모처럼 오붓함을 나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