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주류 유통의 현장을 가다!


<도매상 상차작업>

하루에 이고 지는 술병만 13만 병
주류유통의 숨은땀, 용우상사 상차작업장에 가다
 
동이 트지 않은 겨울 아침. 좁은 골목을 메우는 것은 짙은 어둠뿐이 아니다. 우당탕! “카스 한 파레트요.”, “여기는 참이슬 하나!” 도매상 직원들이 내뿜는 활기도 가득 하다. 도매상에서는 매일 아침 상차 작업을 실시한다. 상차 작업은 직매장에서 납품한 술을 주점이나 마트에 배달하기 위해, 각각의 배달차량으로 옮겨 싣는 일이다.

술병 소리를 나침반 삼아 작업장에 도착했다. 소주와 맥주가 담긴 플라스틱 ‘P박스’들이 산처럼, 미로처럼 쌓여있었다. 층층이 쌓인 P박스 옆에 섰다. 기자의 키보다 한참이나 높다. P박스 하나를 30cm로 계산하면 총 4m에 달하는 높이다. 직원들은 그 미로 속을 헤치며 술을 싣고 있었다.

“춥죠? 가만히 있으면 추워요. 이렇게 움직여야 견딜 만해요.” 판매사원 김종오 씨는 올해 주류경력 10년 차의 베테랑이다. 그가 배달하는 지역은 서울 중랑구와 노원구, 경기도 의정부, 양주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다. 하루 이동거리만 250km에 달한다. 한 상자라도 술이 부족하면 낭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 먼 거리를 다시 오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거래처와의 신뢰가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분의 술을 실을 공간이 없기 때문에, 차에 실린 술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손에 들린 주문서는 배달을 시작하기도 전에 너덜너덜해졌다. 김 씨가 차에 실린 술의 수량을 확인하고 배달 동선에 맞게 술의 위치를 재정리하는 동안, 그와 한 조를 이루는 배송사원은 창고에 있는 술을 차로 옮긴다. 자신들이 배달할 술은 직접 실어야 하기 때문에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비교적 주문량이 많은 소주나 맥주는 지게차 기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외의 술은 배송사원이 직접 지고 날라야 한다.

 

물 흐르는 듯 상차 작업, 오랫동안 맞춘 손발의 힘

“취급하는 물량에 비해 창고나 상하차 작업장의 부지가 좁은 편입니다. 때문에 조금만 부주의해도 사람끼리 부딪히기 일쑤에요. 술병이 깨지는 거야 그럴 수도 있지만 사람이 다치면 큰 일이 되죠.”

직원들을 바라보는 양태만 전무의 눈에 미안함이 가득하다. 실제로 용우상사의 상하차 공간은 협소한 편이다. 그들이 하는 말로 ‘길거리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인근의 교통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배달사원들이 물건을 싣는 동안 영업사원들은 주변 교통정리에 나선다. 웬만한 교통경찰은 저리 가라할 실력이다. 양 전무는 “다행히 영업사원 모두가 배달 일을 해왔던 사람들이라 서로 사이가 좋고 잘 돕는다”며 직원 자랑을 이었다. 작업 공간의 특성상, 동시에 작업을 할 수 있는 배달차량은 다섯 대다. 앞 차가 작업을 마치고 배달에 나서면 뒤이어 차들이 들어온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의 제품처럼 물 흐르듯 진행된다. 오랫동안 선후배가 손발을 맞춰온 덕분이다.

작업장 한편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판매사원 이승민 씨. 그는 연신 커피를 마시며 추위를 달래고 있었다. 그에게 상차 노하우에 대해 물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개 주문량이 많은 술을 제일 안쪽에 실어요. 그 다음으로 많은 순서대로 싣고, 종이박스나 생맥주 통을 제일 마지막에 두죠. 그럼 뒤쪽으로 갈수록 높이가 낮아지는데 그렇게 실어야 운전할 때 위험하지 않거든요.”

21대의 배달차량에 술을 싣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 남짓. 이날 출고된 술은 3400여 상자다. 한 상자를 20병으로 계산하면 총 6만8000여 병이다. 그 많은 술을 내리고 또 실으며, 하루 두 번 이고 지는 것이 상하차 업무다.

 



*MINI INTERVIEW_창고장 김명선 부장


창고장으로서 맡고 계신 업무는 무엇인가요?

물건의 입고와 출고를 확인하고 수량을 파악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입고된 술과 출고된 술의 수가 딱 맞아 떨어지는 게 가장 중요하지요. 창고장이라 해서 모든 술을 관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창고 담당 직원들과 일을 나누지만 책임을 지는 게 제 역할이겠죠.
 

술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물건을 관리하고 수량을 확인하는 일도 어려워졌겠어요

주류 유통업에 몸담은 지 27년이 됐습니다. 그때부터 꾸준히 창고를 맡고 있는데, 전에는 술이 이렇게까지 다양하지 않았어요. 지금의 30% 수준이었죠. 요즘은 종류만 해도 2500여 종에 이릅니다. 새로운 술이 들어오면 거기에 익숙해지는 시간도 필요하고, 보관할 장소도 추가적으로 필요해집니다. 상당히 힘들어졌어요.

 
오후 일과는 어떻게 되시나요?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하루에 두 번 상차 작업을 합니다. 그 사이에 제조사나 수입사에서 술이 들어오죠. 잠시도 넋을 놓고 있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배달 나갔던 차들이 돌아오면서 반품을 받아오거나 빈 병을 싣고 오잖아요. 그걸 다시 확인하기 때문에 모든 차들이 돌아오면 그제야 문을 닫습니다. 당직도 서야 해요, 2인 1조로. 우리 보물 창고를 그냥 둘 수가 없잖아요.

 
춥고 힘든 이 일을 계속 해 오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이야 별다른 기술이 없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다행히 꼼꼼한 성격과 잘 맞아서 지금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여러모로 도와주셔서 몸이 힘든 것 빼고는 모두 만족스럽습니다. 창고장이라는 이름의 자부심도 있고요. 천직이라 생각하고 정년퇴임하는 날까지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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